#미제사건은끝내야하니까 를 출시하고…(1)

2020년도에 <더웨이크>를 출시한 후 수 년간 회사 일에 매여 허덕였다. 게임을 할 여유도, 게임을 만들 엄두도 낼 수 없는 기간이 이어지면서, 이제는 게임과는 완전히 멀어진 인생을 살게 되었다고 생각했고, 강연이나 인터뷰 요청도 최대한 거절하고 마음을 비워내려 노력했다.

그러던 중 찾아 온 2023년의 인사이동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출퇴근이 일정하고 업무에 여유가 있는 부서. 퇴근 후에는 얼마든지 직장과 관련 없는 일에 몰두할 수 있는 기회. 정확히 1년이었다. 2024년 2월에 예정된 인사이동이 있기 전까지 1년이라는 시간이 주어 졌으니 이 기간동안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5월경 신작 구상을 시작했다.

<레플리카>, <리갈던전>, <더웨이크>로 이어지는 <죄책감 삼부작>은 모두 ‘나의 죄책감’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는 게임을 통해, 내가 속한 국가, 사회, 직장, 가정에서 마주치는 ‘현실’을 묘사하고 그 속에서 번민하고 방황하는 나를 보여주려고 했다. 내 게임에는 분명한 주제의식과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고, 그것이 내 게임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게임이 항상 작가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어쩌면 게임을 단순히 매체로서 도구화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의심도 있었다.

메시지가 있는 게임은 중요하다. 하지만 게임은 메시지보다 더 아름답고 중요해야 한다.

그래서 새 게임은 나와 완전히 분리된, 내가 없이도 완벽하게 생존 가능한 세계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새 게임의 출발이었다.

게임의 소재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떠오르는 이야기는 모두 슬프고 괴로운 일들 뿐이라, 그것이 참으로 속상했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 여행을 가다가, 길을 걷다가, 일을 하다가 너무도 허망하게 목숨을 잃은 이야기. 누군가 당연한 권리, 당연한 존재를 주장하다가 이유 없이 맞고 갇힌 이야기들… 그리고 그 참사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피해자를 감추고 그들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적어도 이번에는, 게임에서까지 이 괴로움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권력자는 있지만 통치자는 없는 혼란 속에서 살아남고자 발버둥치는 사람들에게, 반복되는 차별과 부정 속에서도 버티고 서로 연대하려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은 위안이 될 수 있는 그런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거짓말을 한다는 소재에 마음이 닿았다. 책임져야 할 사람이 책임지고 마음아파하는 이야기를 적기 시작했다. 누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세상. 굳이 용서하지 않아도 이해하고 연대하는 인물들…

신작의 인물들을 만들고 대사를 적는 과정에서 참 많이도 울었다.